일

날이 굶어있다.

여훈 2016. 12. 19. 15:38


  사흘 뒤 눈을 뜨면 나는 입영 통지서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하루가 달다. 소란스러운 이곳을 나와 역겨운 흙탕으로 기어갈 것이다. 그래도 다음주 토요일에 고대하던 산뜻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내 삶에서 두번째 있는 신비롭기도 하지만 애정이 가는 그런 누나이다. 이번에는 져버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누나라는 작자들에게 이같은 감정을 쌓기란 우주에서 숨쉬기에 가깝기 때문에 여느 여자들 만큼 소중하다. 그녀는 이미 수년전이라 미화가 극에 달한 그 옛날 중3 누나 - 나에게 여자라는 생물을 처음 안겨준 헌신적인 여자였다 - 와는 차이가 있다. 정신이 깎일대로 깎였으며 날도 반듯하게 서있다. 그래서 때로는 무섭고, 싸늘하고 냉랭하게 다가오다가도 유아 같이 섬세하고 여리여리한 감성을 드러낼 때도 있다. 또한 스스로가 싫고 좋음이 분명하다고 하는데, 그처럼 정직하고 똑바른 말은 들어볼 수 있을까?
  시를 좋아하는 그녀는 더위를 못느끼는 매서운 겨울 같았다. 뚝뚝 끊어지는 유난스러운 말투는 한마디 한마디가 절교를 선언하는 듯이 들렸고, 때로 무언가 흐름이 맞아 솔솔 이야기를 꺼내는 오밀조밀한 입을 보면 아가씨를 샘내는 소녀로 보이기도 했다. 그녀를 아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한주간의 감상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엄마를 연상시켰던 식어있는 눈매와 몸짓이 그것이다. 건너편에 앉아 밥을 먹으면 그의 숟가락, 손가락, 눈, 코, 입 부터 귓볼과 머리카락 한올과 정수리까지 쉼없이 뜯어봤었다. 그리고 이따금 질문을 던지면 간드러지는 눈짓으로 도리도리 고개를 돌려보이곤 했다. 
  적다 보니 어디 환상속의 여인네를 끄집어 놓은 기분이 들지만 불과 몇달전 그녀와 떠들고 미소지으며 정을 나눴었다. 그녀의 눈높이는 주로 나의 어깨 언저리에 위치했고 몽땅해지던 단화나 운동화를 신은 날이면 그녀의 목은 눈을 맞추기위한 사투를 요했다. 시집을 내며 시를 쓰는게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가방에는 시집이 늘 자리했고 시집들은 등굣길에 이따금 꺼내져 읽히곤 했다. 평소 눈과 꼿꼿한 허리만큼은 근력이 출중한 그녀였지만 기력이 쇠한 때에는 눈이 맹해지고 허리마저 눌러 앉아 여간 애처로운 몰골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잠에 잘 취할듯이 보이는 그녀의 자유로운 눈망울은 실제로도 풀어짐이 많았고 잠만큼이나 술에도 곧 잘 취하는 편으로 기억한다.

  여인은 망자가 보이거나 들리는 것일까, 저혼자 다른 세상을 품고 잠들어있다. 그곳엔 그녀 혹은 그녀의 망자만이 살고 있는지. 당장 기어가 어깨라도 쳐주고 싶지만. 닿지 말아야 할 층계로 움츠린 여자를 내버려두기 보다는 그대로 지켜줘야 할 것 같다. 턱도 문도 없는 방안을 침범하고 싶었다. 표정이 결여된 여인의 낯이 퇴근길 동행해줬으면 좋으련만.. 속좋은 친구들을 대신해 사과라도 하고 있는걸까, 있지 않은 이유를 찾아야 할것만 같다는 생각이 속을 어지른다. 허락되지 않은 많은 얼굴들이 여자를 가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