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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맞이하는 일.
의미상으로는 오는 사람을 맞이하러 나가는 행위를 말하지만, 나는 보통 오갈 때 모두 마중이라는 표현을 잘 쓴다. 마중이라는 단어가 좋다. 평소 논리가 부족해서 설명을 못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 또한 그렇지만 단어의 느낌이 따스해서 그냥 마음에 든다.
경험상으로 나 혹은 누군가가 떠나는 식의 '마중'에 대한 잔상이 더 깊다. 사실 배웅이라는 엄연한 반대말이 있음에도 마중이라는 표현을 애용하는 속에는 헤어짐, 작별, 이별 따위 단어가 주는 우울한 이미지를 엎기 위한 염원이 담겨있다 생각한다. 아무래도 그러한 단어들보다는 '마중'이 뭔가 더 여지를 주는 인상이지 않은가. 비교를 하자면 마중은 살가운 감이 강하나, 작별은 차갑고 어딘가 쓸쓸한 구석이 있다.
봤듯이 나는 단어를 마음대로 쓰는 버릇이 있다. 지금은 떠나온 내 전공 수업의 산물일 수도 있고 애초에 생겨 먹은게 그런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로 인해 누군가에게 오해를 일이키기도 했고 별다른 의문이나 이해 없이 그냥 흘려간 적도 많았으며, 드물게는 앞서 말한 오해로 인해 작은 다툼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는 단어 안에 마음을 들어주는 혹은 그런 시도를 해준 이들도 고맙게도 있었다.
그저 문득 연상된 마중이라는 두 글자로 시작한 글이라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단지 떠오르는 혹은 연관된 이야기들로 몇 문단 더 채우려고한다.
글을 쓰는 지금 노래를 듣고 있는데, 무작위로 넘어가는 곡들이 희한하게 옛날로만 흘러 자연스레 어릴적과 지난 일들을 추억하게 된다. 누가 말했는데 노래는 정말 추억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노래를 함께 듣던 어떤 사람, 혹은 그 장소를.
처음 '마중'이라고 쓰며 길어진 이 글의 바탕에는 그리움이 깔려있다. 특정 사람들과 장소를 떠나는 현재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다음주면 영 모르는 동네로 가 생활을 하게 된다. 짐은 9할 이상 싸두었고 올라가는 길은 어머니가 고맙게 함께 해줘서 나는 운전대 옆에 앉아 재잘거리며 편하게 갈 것이다. 나는 보통 남아있는 쪽, 말하자면 기다리는 입장의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떠나는 역할을 맡게된 것이 어색하다. 이 역시 주관이 섞인 관점이겠지만 누구나 그런 사고안에 머문다. 생각해보면 나는 자주 도망을 쳤거나 그런 아이들과 마주쳐왔다. 그런 이유로 상대를 떠나보내고는 그가 떠나버렸다고 자책할 때가 많았다. 여기서 요는 '자책'이라는 부분이다. 나는 알았다. 내가 그들을 가게 만들었다고 스스로 알고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알고있다. 어딘가 아파온다. 더 얘기하자면 그랬기에 원망한적은 없었다는 점이고... 그러니 그만하련다. 우리에게 허락된 미소는 의외로 짧다.